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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직장인 이야기

네덜란드에서 유학 후 취업하기 (2) - 평생 직장이 뭐예요

by bloodynnary 2025. 1. 24.

1편에 이어 써보는 나의 유학 후 취업 이야기


한식이 귀한 네덜란드에서 남이 차려준 끝내주는 점심밥과 더불어, 신입사원에게 꽤 괜찮은 샐러리, 한국인으로서는 감지덕지한 네덜란드 기본 보장 휴가와 워라밸, 주 1회 재택근무, 외국인 비과세 혜택 등 만족스러운 처우였지만, 제일 중요한 '직무'에서 커리어 발전 가능성과 흥미를 느끼지 못 했다 보니,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솔직히 일도 정말 수월했고 (지금 생각하면 6개월 동안 그 팀에 내가 기여한 바는 정말 미미하다. 진짜 밥 먹으러 회사 다녔다 해도 과언이 아님) 같이 일했던 팀 분위기도 전반적으로 좋았다. Tax 분야의 커리어 성장을 위해 갓 입사한 신입사원에게 매우 좋은 포지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나는 이 분야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퇴사를 결심했다.
 
 

퇴사하던 날 하늘


이직이 아닌 생 퇴사에 뒤따르는 부작용은 당연했고,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감수했다. 물론 그 직장에서 존버하면서 이직 준비를 했어도 괜찮았겠지만 (실제로 퇴사 의사를 밝힌 후 팀에서 감사하게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제안도 해주셨다) 당시 나는 이미 마음이 떠버린 상태였고, 예정보다 빨리 인수인계를 마치고 퇴사했다. 무엇보다 그렇게 마음이 떠버린 회사를 다닌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도 회사에게도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퇴사하자마자 몇 개월 동안 면접을 줄줄이 보면서 내가 갖추고 있는 건 무엇인지 부족한 건 무엇인지 파악하고 플랜을 세우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 나에게 물질적인 보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의 의미와 나의 성장 가능성이라는 걸 다시금 확인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돈도 매우 중요하다. 아, non-EU 외국인으로서 비자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 없지. 이 모든 걸 알고도 사실 퇴사한 거라 후회는 없음. 좋은 인생 공부했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제 안 해도 될 것 같음.
 

백수 되고 3개월쯤 됐을 때 잠깐 일했던 하를렘 카페. 비자만 아니었음 카페에서 일하는 게 내 적성에 딱 맞는데 말이지


1편 말미에 썼듯이 작년 7월 초에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오퍼를 받고 바로 계약 후 일을 시작했다. 지금 다니는 회사도 한국계 회사로 이전 직장과 산업군은 다르지만, 내가 발전시키고 싶은 커리어에 꼭 필요한 포지션을 제안했고, 무엇보다 당시 가장 긴급했던 비자 스폰서쉽을 굉장히 빨리 처리해주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새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타이밍 진짜 기가 막혔다. 이렇게 작년 봄부터 여름까지 나는 초고속 롤러코스터를 연속으로 10번 타는 듯한 감정의 소용돌이 (불안, 우울, 초조, 기대, 실망, 절망, 해탈, 희망, 감사... 이하 생략) 를 경험하고, 그 후로는 인생살이 한 단계 레벨 업 했다는 마음가짐으로 매일의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것이 최대의 고민이 된 일상에 또 한 번 감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초등교사 관두고 무슨 일을 하냐고?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이기에 너무 솔직하게 쓸 순 없으니 긍정 렌즈 장착하고 쓰겠다. 한국계 회사 네덜란드 지사에서 HR & GA 어시스턴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Human Resources & General Affairs. 영어로 쓰니까 뭔가 거창한 걸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쉽게 말해 인사 및 총무 관리 직무다. 직원 급여 관리부터 인사 관련 전반적인 업무와 소규모 자금 관리 및 지출, 간단한 세무 관련 서포트까지... 다양한 부분을 포괄적으로 처리하고 있어 배울 수 있는 점이 많다. 의외로 학교에서 일하며 썼던 스킬이 어찌저찌 쓰이기도 한다. 역시 모든 경험은 나에게 고스란히 남아 자산이 된다. 주로 아침에 한국에 있는 본사와 시차 7-8시간을 두고 소통을 많이 하고, 본사와 네덜란드 컨설팅 회사 사이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도 한다. 본사도 그렇고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지사이다 보니 셋업할 부분들이 많다. 입사 전 경력 많던 전임자가 많이 베이스를 다져놓고 퇴사해서 대부분 수월하지만 가끔 나 같은 주니어에게는 다소 도전적인 문제가 생길 때마다 당황스럽긴 하다. 그렇긴 해도 A to Z 나 혼자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여기 저기 물어보면서 많이 배운다. 그런 점이 내 성격과도 잘 맞고. 긍정 렌즈 장착했으니 반대로 부정 렌즈 끼고서 바라보면 그것이 바로 현 직장의 단점 되겠지만 어디든 완벽한 곳은 없다. 나와 fit이 잘 맞는 게 제일 중요하다.
 

늘 발랄한 퇴근길 발걸음


세상 어떤 일이든 각자의 능력과 성격, 처한 상황 등에 따라 계속 하고 싶은 일이 되거나 그만두고 싶은 일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로 이제는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다이나믹하게 변하는 정치 및 경제 상황과 기술의 발전 등으로 인해 한 직장 또는 직종에 평생 머문다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게 들린다. 시간이 흐르고 시대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일과 직장의 흐름도 바뀐다. 이런 거대한 흐름 속에서 퍼스널 브랜딩은 필수적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무엇을 잘할 수 있고, 어떤 일을 할 때 직무 만족도가 높을지 꾸준히 고민하며, 나의 강점을 살려 커리어를 지속할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생업에 있어 돈과 직위도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나를 먼저 돌보지 못하고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그 커리어의 지속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요즘 교직을 떠나는 선생님들이 많은데 오죽하면 그럴까 싶다. 지금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교육 활동을 하는 선생님들이 그저 존경스러울 정도로 힘든 현장임을 알기에, 계속 버티고 싶지 않아 떠나는 선생님들을 나는 마음 한 편으로 응원할 수밖에 없다. 똑똑하고 재주 많은 선생님들을 놓치는 한국의 교직 여건이 개선되려면 오래 걸리겠지만 요즘 선생님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교직을 떠나거나 휴직을 포함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잘 되었으면 좋겠다.

다들 화이팅